<2017년 4월 2일>
아몬드 by 손원평 - 진짜 감정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일, 진정 평범한 일
평점 : ★★★★★
나에겐 아몬드가 하나 있다.
당신에게도 있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거나 가장 저주하는 누군가도 그것을 가졌다.
아무도 그것을 느낄 수는 없다.
그저 그것이 있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아몬드>라는 특별한 책을 만났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특별한 아이가 나오는 특별한 이야기,
그 아이의 특이한 점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아이로 인해 세상의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
소설인데 놓치고 싶지 않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포스트잇을 잔뜩 붙였다.
붙인 부분들을 읽고 또 읽었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오히려 더 많은 감정들을 느끼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그 아이가 느껴야 할 감정을 내가 대신 느껴주는 것처럼 그렇게 이 소설은 내 가슴에 와닿았다. 마치 원래 내 감정이었던 것처럼....
작가의 자전적 소설일까?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이의 묘사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져 마치 작가가 그 아이인 것처럼, 그 아이가 작가인 것처럼..
아이가 겪은 끔찍한 사건에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소설 속의 아이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 아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아이를 그렇게 보호하기 위한 작가의 배려일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야 그 아이가 자신을 원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심플하면서도 매력넘치는 문장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 <아몬드>..
평범하지 않은 소년의 어두워 보이면서도 결코 어둡지 않은 희망의 성장이야기..
윤재는 편도체에 외부 자극이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감정표현 불능증'을 지닌 아이다.
엄마와 할머니의 따뜻한 관심을 받으며 사람들 사이에게 자라지만, 소년의 생일 기념 식사를 하러 나간 날,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 할머니를 잃고 엄마는 의식을 찾지 못한다. 심박사님의 도움으로 헌책방을 운영하며 학교에 다니는 윤재에게, 곤이라는 괴물이 나타나고..
둘은 특별한 인연으로 친구가 된다. 곤이와 도라와 지내며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조금씩 변화가 있게 되는 소년...
소년이 감정을 찾아가는 모습이 가슴 뭉클해지는 따뜻한 소설이었다.
(P.24) - 튀지 말아야 돼. 그것만 해도 본전이야.
그 말은 들키지 말라는 뜻이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걸. 그걸 들키면 튀는 거고 튀는 순간 표적이 된다.
(P.73) 평범. 남들과 같은 것. 굴곡없이 흔한 것.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평범하게 졸업해서 운이 좋으면 대학에도 가고,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을 얻고 맘에 드는 여자와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그런 것. 튀지 말라는 말과 일맥 상통한 것.
우리는 유난히 우리와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경계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를 보며 평균치를 계산한다.
하나 하나의 의견이 중요한 것보다 어느 무리의 통계를 살펴보기를 좋아한다.
그리고는 그 숫자에 미치지 못하거나 평균적인 의견과 대립이 될 때 우리는 적군이 되어버린다.
다름이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단지 말뿐인 거다.
스타와 왕따가 한 끗 차이이듯이, 허울좋게 다르면 스타이고, 얄밉게 다르면 왕따인거다.
우리는 참 많은 것을 꾸미고 살아간다.
자신이 느끼는 진실된 감정을 가슴 속 깊이 숨긴 채 넘쳐나는 감정의 홍수속에서 적절하게 대처할 감정들을 머릿속에 계산을 해간다.
말 그대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을 해서 의도적으로 나오는 가짜 감정들..
자신조차도 속아버릴 정도의 연기력으로 가짜 감정들을 진짜 감정으로 둔갑시켜 버린다.
소통 불능 시대...
리액션 과장 시대...
요즘처럼 소통이 자유로운 시대가 또 있었을까?
상대방이 하는 말에 격한 제스처를 해주는 시대인데...... 그럼에도 소통 불능 시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이 책을 덮으며 눈물이 났다.
소년의 엄마가 기적처럼 일어난 것도,
소년이 친구를 구하기 위한 극한 상황으로부터 느껴진 감정 때문에도.. 모든 상황의 모든 일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의 얽힘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런 상황보다 더 눈물나게 했던 것은 아래의 문장이었다.
(P. 210)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이런 것을 용기라 부르기도 한다.
진짜 감정을 진짜로 드러내는 것에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 지금 세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용기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 채 가짜 감정에 자신의 마음을 실어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진짜 감정을 표현하고 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자.
거짓 감정으로 지내는 우리 역시 감정을 느끼지 못하여 남들과 같은 감정들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느끼는 감정들을 편견없이 마주할 수 있는 사회가 소통이 가능한 사회일 것이다.
진짜 감정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 평범한 삶이 공존하는 사회일 것이다.
(P.146)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어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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