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6일>
상냥한 폭력의 시대 by 정이현 - 친절과 미소속에 숨겨져 있는 폭력의 진실
평점 : ★★★★
참 제목이 예쁜 책을 만났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
내 느낌에는 그랬다.
'폭력'이라는 단어와 '상냥한'이라는 형용사와의 만남이 매끄럽지 않으면서도 나는 이 제목이 예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이현'이라는 작가의 이름만으로 책을 집어들었고, 읽기 전부터 기대감이 높았다.
소설집이라고 떡 하니 써있었음에도, 단편집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읽어내려간 소설들..
'달콤한 나의 도시'와 느낌이 많이 다르다.
뭔가 절제되어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들과 차가움이 느껴지는 그들의 모습이 자꾸만 그려졌다.
앞표지의 그림이 너무 잘 어울리는 소설집이었다.
하나의 이야기가 네모난 박스의 아파트에 사는 내 모습같이 보이고, 내 이웃의 모습같이 보이고..
총 7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상냥한 폭력의 시대>...
7편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어느 이야기의 주인공과 가장 비슷한지 비교해본다.
7개의 모습이 다 나일 수도 있겠다는, 끔찍한 생각도 하면서 다른 이들도 나와 같을까, 라며 동질감이 느껴지는 동족을 찾고 싶어 두리번거린다.
그런 이들이 내 주위에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1. 미스 조와 거북이와 나
(P.33) 침대에 누워 채소 샐러드를 먹으면서 바위와 샥샥의 목덜미를 번갈아 쓰다듬고 있으면 반드시 세계와 내가 이어져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샥샥과 나 사이에, 바위와 나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줄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갈 것이고 천천히 소멸해갈 것이다.샥샥은 샥샥의 속도로, 나는 나의 속도로, 바위는 바위의 속도로.
2. 아무것도 아닌 것
(P.52) 유리 파편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을 거예요. 걸을 때마다 발다박에 스칠 거라고요.
(P.60) '김보미 아기'는 불완전한 존재였다. 불완전하고 위태로웠다.아기의 법적 보호자조차 되지 못하는 미성년자 김보미도 불완전하고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언젠가부터 프라이팬으로 요리를 할 때마다 짝꿍이 아닌 유리뚜껑을 바라보며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내가 보였다.
위태로워 보이지 않았던 내 삶인 것 같은데, 프라이팬에 맞지 않는 유리뚜껑을 보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내 모습도 줄 위의 서커스단마냥 위태로워 보이는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3. 우리 안의 천사
(P. 97) 내가 잠시 한눈을 팔아도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단죄가 또 유예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하고 절망했다.
극적인 파국이 닥치면, 속죄와 구원도 머지않을 텐데.또다시 살아가기 위하여 나는 바다 쪽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6. 서랍 속의 집
(P.182) 차가 고속화도로를 120킬로미터로 달리는 내내 부부는 정적을 지켰다. 대화가 없어도, 음악이 없어도, 라디오 소리가 없어도, 사랑이 없어도, 세상 모든 소리와 빛이 사그라진 곳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관계였다.
7. 안나
(P. 215)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원망하기 위해서, 욕망하기 위해서, 털어놓기 위해서.
(P.218) 안나의 선량한 눈매와 묘하게 대비되는 무덤덤한 말투는 듣는 상대로 하여금 힘든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경은 입술로는 어머 어떡해요, 라고 했지만 무겁지만은 않은 기분으로 안나가 이어 들려줄 이야기를 기다렸다.
~ 안나의 이야기들은 지독히도 현실적이었고 그래서 경에게는 도리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덕분에 경은 자신의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P. 222) 위대한 아이들 틈에서 기특한 아이는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경은 너무 늦지 않게, 고맙습니다, 라는 답장을 보냈다.
웃고 있는 이모티콘이나 하트도 잊지 않고 붙였다. 아이가 옮길 유치원을 결정했다.
안나를 바라보며 자신이 한 수 위라는 위안을 받는 경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녀의 영혼없는 대답과 문자를 보내는 리액션이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경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겠구나, 라는 목적지에 닿아있었다.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자조적인 웃음이겠거니..하면서..
우리는 슬프고 마음 아픈 일에 깊이 공감하며 눈물도 흘리고 슬퍼한다.
그 눈물과 슬픔이 나는 저 사람보다 낫구나,라며 위안을 삼을지도, 내가 당하지 않은 일이라 다행이다, 라는 안도가 섞여 있을 수도 있겠다..싶다.
상냥하고 냉정하고 차가운 시대를 살고 있는 이야기를 대변하는 문장들을 꼬집어내면서 소설들을 다시 읽는다.
읽으면서 공감하고, 읽으면서 반성하고, 읽으면서 씁쓸하다.
저 모습이 내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 저 입장이면 나도 저러겠지..라는 마음까지..
나도 모르는 사이 나 역시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현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 최적화가 되어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않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면서도 폭력이 아닌 것처럼 포장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얼핏 보이고 말았다.
보여지는 모습과 마음이 동일시되지 못하고, 그 가운데 가식이라는 가면이 씌워져있는... 싸늘한 웃음과 어느 것이 진짜 모습인지 알지 못하도록 나와의 접근을 막아버리는..
나와 내 가족뿐 아니라 흔한 예능방송과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목격이 되고, 사용되고 있는 '영혼없는 대답 & 영혼없는 리액션'이 그 답이지 싶다.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면서도 공감한 척, 별로 좋지 않은 마음이면서 손은 '좋아요'를 터치하는 가식을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좀 더 솔직해지면 따를 당하는 사회..
진정한 소통과 공감이 배제된 사회..
그런 사회의 일원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면 이제는 진실된 소통과 공감의 길을 찾아봐야겠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우리도 산업시대의 마인드를 벗어나 휴먼시대의 마인드로 변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제 3자가 되어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책이다.
작가들도 대단하지만, 편집자들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권의 책이 이해가 되어버리는 글귀를 뒷 부분의 몇 줄을 올리는 그 능력.. 놀랍기만 하다.
그들이 고심하여 올린 그 문장이 한 권의 책에 대한 느낌을 정리해준다.
느끼는 것보다 표현이 어려워 고민하는 나같이 어설픈 독자에게 강력한 한 방이다.
미소 없이 상냥하고 서늘하게 예의 바른 위선의 세계.
무서운 것도, 어색한 것도, 간절한 것도 '없어 보이는' 삶에 질기게 엮인 이 멋없는 생활들에 대하여
" 우리는 살아갈 것이고 천천히 소멸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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