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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씨 책이야기/책리뷰

(책리뷰)'피그말리온 아이들 by 구병모 - 누구를 위한 갈라테이아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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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권하는 수아씨

피그말리온 아이들
구병모 저

예스24 | 애드온2

 

<2019년 2월 11일>

* 피그말리온 아이들 by 구병모 - 누구를 위한 갈라테이아들인가

* 평점 : ★★★★


독서모임의 지정도서로 '위저드 베이커리'를 선정하고, 구병모 작가의 책들을 찾는 와중에 청소년문학쪽에서 눈에 띈 책, '피그말리온 아이들'.

이 책을 읽기 전, 작가의 다른 책을 먼저 보았는데, 문장에 쉼표가 몇 개인지 숨쉬다 앞 내용을 까먹어 되돌아가기를 여러 번. 읽다가 지쳤있던지라 이 책을 들고 살짝은 망설였다.

그런 걱정은 뒤로 할 정도로 흥미로운 내용이었고, 한 번 잡은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당신은 누구의 욕망대로 살고 있습니까?"

그리스 신화 속 피그말리온은 흔히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낭만적인 조각가로 묘사되지만, 실은 자신의 욕망을 타인에게 투사하려는 독재자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태생이 불우한 아이들을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외딴 섬에 세워진 로젠탈 스쿨. 다큐멘터리 PD인 '마'는 설립 이래 한 번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이 학교를 카메라에 담기로 결심한다. 로젠탈 스쿨은 완벽한 시설을 자랑하지만 취재를 통제하는 교장과 학교를 찬양하기만 하는 아이들을 보며 마는 의심을 품는다. (책의 뒷표지의 줄거리를 인용하였습니다)


(P.20) 특별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라 그런 과정을 겪고 변색되는 게 인간관계의 본질이거나 때로는 전부이기도 하다는 것을, 마는 조금 더 세월이 지나고서 알았다.

나아가 사회인이 된다는 건 - 어떤 직업을 가지고 경제 활동을 하는 사회 구성원이 된다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삭막한 섬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는 걸 깨달아 온 시간이었다.

(P.47) 진정한 의미의 건강이란 항상 예외의 생활에서 비록된다는 게 마의 생각이었다.

스파르타식 재수 학원에 들어간 아이들도 일요일에는 각자의 집에 다녀오고, 전지훈련에 참가한 혈기왕성한 야구 선수들도 몇 달간 빡세게 조인 다음 귀가하게 마련인데 이 아이들은 돌아갈 데가 없잖아. 설마 주말과 공휴일에도 이 시간을 엄수하는 거야? 평소보다 한두 시간은 늦게 일어나 주고 좀 늘어지기도 하고 그래야 사람 사는 거 아니야?

(P.64) "중요한 건 이 사회에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데 있지, 아이들이 그 다양성을 실제로 체험해 보는 건 또 다른 문제거든요. 그건 우리 학교뿐만이 아니라 작금의 교육 현장 어디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P. 103) 고립감을 느끼기 쉬운 자연환경에 철저하게 반복되는 기계적인 일과와 규칙, 거기에 원칙을 준수한다면 또래 집단 형성은 둘째 치고 최소한의 플라토닉 연애마저 불가능하다는 상황만으로도 돌아 버릴 조건은 충분했다.

(작가의 말중에서)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요소를 타인에게 갖다 붙이는 행위에 성공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타인이 아니게 되고 나를 투사한, 내 뜻을 반영한 내 소유의 로봇이 된다. (..중략..)

세상의 수많은 갈라테이아들은 오늘도 부모 또는 교사 또는 이 세상 모두일지 모르는 자기들의 피그말리온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당신 소유가 아니고 당신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어디까지나, 말하고 싶다.


어른이 되면 많은 것을 따진다.

머릿속으로 수만가지의 계산을 한다.

어떤 것이 나에게 더 이익이 되는건지, 쉼없이 돌아간다.

선의를 위한 행동을 했다 해도 그것 또한 주위의 아무런 제재없이 순수한 마음이 전부일 수가 없다.

수많은 계산이 들어간다.

정말 쉽게 예를 들자면 작금의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다 계산되고 계획된, 그것도 자신들의 이익에 맞춰진 선택이고 행동이듯이 어른들의 머릿속은 그렇게 주야를 가리지 않고 바삐 움직인다.

마음이 끌리는대로 하기엔 우리는 너무나도 사회라는 곳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

사랑에 미쳐 있는 시기도 사회에 발악되는 시기도 사회에 완전히 발을 들여놓기 전인 어른뱃지를 다는 앞이나 뒤다.

그렇게 갓 성인이 된 이들도 그러한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아이들은 일일히 따지지 못한다.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을 하기도 전에 자신의 판단으로 행동하는 이들이 이들이다.

전후 사정도 이익 관계도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바로 앞의 상황에만 집중한다.

(P.214) " ... 너희들은 왜 우리를 도와주는 거지?"

(...중략) 그럼에도 그것은 결코 무심코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무엇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이 아이들은 기계가 아니며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켜 왔는데 단지 세상에 나가기 전까지 감추고 있었을 뿐인지, 이들이 섬을 전복할 힘이 없다면 최소한 섬에서 탈출하기를 원하는 것인지 알아야 했다.

주인공 '마'는 위험을 안고 그들을 구해주는 아이들에게 묻는다.

"왜 우리를 도와주는 거지?"

나역시 여기서 많은 생각을 한다.

아이는 답한다.

"글쎄요, 생각 안 해 봤어요."라고...

좋게 말해서 저런 대답이 나왔지, 속 마음은 이랬지 않을까.

"도와줘도 지랄이야."라고..

돌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아이들은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이들이니까.

어른들은 도와주는 것에 갖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는 게 당연하니까.

주인공도 '그 전 일'에서 이런저런 상황에 대해 생각하다가 결국 돌아섰던 거였으며, 그것에 대해 그렇게 후회를 했었기에 같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에 아이들에게 질문을 한 거였다.

그 질문은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해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일탈적이어서였다.

너무나도 어의없는 대답을 듣고 그는 비로소 깨닫는다.

(P.245) 그리고 지금, 그게 누구든 간에 등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똑바로 돌아볼 것이다.

라고.........


아이들은 아이들 그 자체다.

그들이 비록 부족할지언정 어른이 무조건적으로 통제하고 간섭하고 명령할 이유는 없다.

그 아이들이 어떤 가정환경을 살고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조건이 똑같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다만, 조금 더 신경써 그 아이들을 지켜봐주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큰 일탈을 하지 않는 한 그들의 인생을 어른의 잣대로 재단하지 말자.

그들이 어떤 미래를 살지는 신을 빼고는 그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생각한다.

내 아이의 진학문제에 대해, 그리고 가정환경이 안 좋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동정어린 시선만을..

이 글을 쓰는 내 앞에서 이제 중3이 된 내 아이는 게임동영상을 보며 노래를 기분좋게 따라부르고 있다.

친구들과 놀다가 다리를 겹질러왔다고 붕대를 감고 왔음서..

저 아이의 머릿속을 꿰뚫어보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저 아이가 즐기는 그대로 그냥 바라봐주기로..

아이가 실수를 해도 아이가 견뎌낼 수 있는 만큼이라면 무한걱정은 좀 내려놓기로..

아이들을 아이 그래도 바라봐주는 것, 참 쉬우면서 어렵다.


(P.S) p.234 ~p.237까지의 내용은 육아서와 다름없다.

많은 부모들이 읽어보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 중 한 문장만 옮겨 놓아본다.

(P.235) 아이는 기다릴 줄 모르고 참을성이 없으며 제멋대로다.

그게 아이다. 그게 정상이다. 어른이 하자는 대로 참는 건 아이가 아니다. 그런 아이가 있다면 그건 말 그대로 그저 참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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